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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모드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소식

INTERVIEW

베네통 기획실 MD팀장 김상윤 동문의 Creative MD 특강

  • 작성일20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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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2, 3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크리에이티브 MD에 관한 특강이 열렸다. 강의를 맡은 김상윤 팀장은 에스모드 서울 13기 동문으로 2003년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면서 여성복 전공으로 본교를 졸업하고, 보끄레머천다이징 온앤온 디자인실을 거쳐 2006년 베네통 코리아에 입사, 현재 베네통 기획실 MD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 동문은 에스모드 재학 중 에피소드와 현재 한국 패션회사에서의 근무 환경 등에 대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후배들에게 얘기하며 패션업계에서 날로 중요해지고 있는 머천다이저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길면 2년, 짧게는 몇 달 후면 취업을 하게 될 2, 3학년 후배 여러분들께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김상윤 동문의 크리에이티브 MD에 관한 강의 내용.



패션에 입문하게 된 계기, 캘빈클라인

학교에 와서 젊은 후배 여러분들을 보게 되어 기쁘다. 요즘 옷 잘 입는 젊은 사람들의 스타일과 착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신선한 자극을 얻고 회사로 돌아갈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 닉스, 스톰, 마리떼 프랑수와 저버, 캘빈클라인 브랜드의 진팬츠가 한참 유행했었다. 디자인 이름을 딴 옷들을 사 입으면서 이 청바지를 디자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캘빈클라인 디자이너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 시작하다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C-에서 A 로

대학진학을 원하는 부모님의 뜻대로 4년제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패션 공부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대학을 자퇴하고 에스모드 서울에 입학했다. 하지만 관심만 있었지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던 터라 1학년 스틸리즘 점수는 내내 C- 대에 머물렀다. 2학년에 진급하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연이어 스틸리즘 과제에 A 점수를 받게 되었다. 분명 내 그림은 아직도 형편없는 수준인데 왜 높은 점수를 주셨는지 의아한 마음에 교수님께 그 이유를 여쭈었다. 그 때 프랑스 교수이신 니아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분명 너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네 데생에 점수를 주는 미술 선생이 아니라 패션 디자인 선생이다. 내가 본 너의 디자인 감각은 우리 반 학생 중에 최고다. 못 그린 너의 그림 너머에 있는 스타일과 디자인 실력은 분명 A 다"
나는 그 때 '내가 정말 에스모드에 오길 잘했구나. 이 곳이 아니면 내 재능을 이렇게 발견해 줄 수 있는 학교가 또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패션은 옷과 디자인 능력으로 승부하는 것이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관건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패션 디자인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80명 여성복 전공자중 유일한 남학생이 되다

보그 코리아를 정기 구독하면서 광고 1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독을 했다. 그러면서 여성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정서상 남자가 여성복을 전공하는 것이 어려웠다. 담임 선생님께 마케팅이나 남성복을 선택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니아이 교수님께선 “넌 분명 여성복에 재능이 있다. 그깟 주변 시선에 신경 쓰지 말아라. 혹시 여성복 전공으로 졸업한 이후에 한국에서 취업이 어렵다면 너를 파리에 데려가 어떻게든 쿠튀르 디자인실에 넣어주겠다. 충분히 능력이 있으니 자신을 갖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고 하셨다. 하여 난 80명의 여성복 전공자 중 유일한 남학생이 되었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친구들이 반가봉 컨폼을 할 때 나는 집에 가서 밤을 새워 완가봉을 해와 교수님께 두 번 씩 컨폼을 받을 정도로 공부에 미쳐 있었고 장학금도 탔다.


심사위원 대상 수상에 이은 취업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상이 따르게 마련이다. 졸업작품발표회에서 나는 영예의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심사 중에 내 컬렉션을 유심히 보신 보끄레머천다이징 이만중 회장님께 바로 12월 3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씀도 들었다. 보끄레에서 전개하던 브랜드 4개 중에 온앤온을 선택한 나는 그렇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패션산업과 함께 변화한 머천다이저

88올림픽 이후 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문화 전반을 비롯해 한국패션 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영캐주얼 조닝을 비롯, 거의 모든 패션 부문의 백화점 매출이 수직적인 성장세를 탔다. 이 때 패션회사의 MD는 경상대 출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어떤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백화점에 걸어도 모두 잘 팔리는 시기였고, MD는 디자인이 아닌, 숫자로만 말하면 되었다.
그러다가 98년 IMF와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사태를 거치면서 소비자들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르고 따지는 스마트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디자인이 관건이 되었다. 따라서 숫자만 아는 MD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고 컬러, 패턴, 스타일링이 뭔지 아는 패션디자인 전공자가 MD 부문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다하는 MD'에서 세분화, 전문화된 MD로

십 년 전만해도 MD는 ‘뭐든지 다한다’는 통념이 있었다. 요즘에는 MD도 그 역할과 책임에 따라 기획MD, 생산MD, VMD, 유통/영업MD, 바잉MD 등으로 나뉘어 진다. planning MD라고 하는 기획MD는 한 마디로 예산 결제권자다. 품평회를 통해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에 대한 평가를 받는데, 이때 아이템의 비율과 디자인 구색, TPO에 맞춰 셀렉트를 하는 사람이 바로 기획MD다. 보통 품평회에선 모델 100개 중 평균 70% 정도가 선택되어 진행된다. 연간 예산과 시즌별 예산을 기준으로 영캐주얼의 경우, 영업이익이 10%가 되어야 한다. 그 순익을 남게 하기 위한 일련의 모든 일이 기획MD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디자인 작업보다는 스타일링이나 쇼핑하기, 분석적인 사고를 좋아한다면 기획MD나 바잉MD를 생각해도 좋겠다.

생산MD는 셀렉트된 모델을 적기에 팔 수 있게 생산에 관여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공장에서 시간 체크, 업무 배분, 공임 책정 등을 책임진다. 유통MD는 영업MD라고도 한다. 생산MD의 책임 아래 옷이 다 만들어지면 판매처 별로 배분을 하는 사람이 유통MD다. 지역마다, 지점마다 고객층도 다르고 옷 입는 스타일도 다르다. 그 차이를 인식하고 주력 아이템과 벌 수를 배분하는 중요한 일을 한다.

스타일링, 마네킹 코디네이션, 행거링, 매장 인테리어를 책임지는 사람이 비주얼 머천다이저, VMD다. 매출이나 디자인 결과물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직종일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보통 패션 회사에서 가장 옷 잘 입는 스타일리시한 사람이 VMD인 경우가 많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아이를 낳고도 장기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종이라는 점에서 스타일링에 관심 있는 옷 잘 입는 여학생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다. 물론 포토샵과 캐드는 VMD의 필수 조건이다. 

'베네통MD로 일하고 있다'고 하면 이태리 베네통을 한국에 수입해 오는 바잉MD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베네통 옷은 한국에서 자체 디자인, 생산한 것이다. 작년까지 일본과 중국에 역수출을 하기도 했다. 바잉MD의 필수조건은 외국어 능력이다. 패션을 공부한 유학생들이 바잉MD 부문에 많이 포진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잉MD가 되려면 엑셀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도 알아야 한다. 최근 에이랜드 등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매장이 늘면서 바잉MD가 수입브랜드로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성도 있고 충분히 도전해 볼 만 하다. 




MD가 '크리에이티브'하다?

'크리에이티브'가 생명인 디자이너에, MD까지 크리에이티브하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함을 알아볼 수 있는 감식안을 가지고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MD가 되려면 MD 역시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회사에서는 트렌디한 MD, 옷, 패턴, 디자인, 컬러를 아는 MD를 원한다. 디자이너들의 결과물을 마지막으로 체크하는 사람이 바로 MD다. 옷에 대해 무지한 MD라면 잘못된 옷, 배색감이 틀린 옷을 지적하지 못하고 그냥 생산해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5월에 출시되는 재킷에 트윌 안감을 댔다던지 하는 심각한 오류를 짚어줄 수 있는 사람이 MD인 것이다. 그래프와 수만 아는 경영학과 출신 MD는 그걸 못한다. 나는 여성복을 입어볼 수 없다는 성별적 핸디캡 때문에서인지, 입고 거울에 비쳐서 옷을 평가하는 여성 MD와는 달리 디테일까지 요모조모 살펴볼 수 있는 것 같다.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입어보는 것이 최고의 공부

회사에 취업한 이후에 내가 어떤 직종을 원하는지 생각하면 이미 늦는다. 디자인실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MD를 해보겠다고 하면 요즘 무시당한다. 졸업 전에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우길 바란다. 전문적인 패션 디자인 교육을 받은 에스모드 후배들에게는 생산MD나 유통MD보다는 기획MD나 VMD를 추천한다. MD로 일하길 원한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셀렉트숍에 가보는 것이 좋다. 여러 브랜드의 옷을 입어보고 직접 그 차이를 느껴보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다.


에스모드 출신, 무조건 기본 이상은 한다

솔직히 졸업하고 내 첫 직장에서 만난 2~3년 차 경력 디자이너들이 우습게 보였을 정도로 에스모드 졸업생들의 실력은 뛰어나다. 개발실, 샘플실과 소통하는 일부터 작업지시서를 쓰면서 원가를 내는 일까지 모두 학교에서 다 배웠던 일이었다.
에프엔에프 총 직원 400명 중에서 디자인실 인력은 약 40명 정도다. 이 중 에스모드 동문이 14명이다.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잘 나간다는 어느 디자인실을 가도 에스모드 출신이 꼭 있다. 에스모드 출신 인력들의 실력이 워낙 업계에서 유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에스모드 나온 사람은 자기 표현도 잘하고 개성이 강해 좀 어렵다'는 인식도 있지만 한국 패션계에선 '에스모드 출신은 무조건 기본 이상은 한다'는 통념이 있다. 그 유명한 에스모드에 다닌다는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졸업 후 첫 직장, 초봉에 연연하지 말아라

학생들 중에선 당장 졸업 후에 자기 브랜드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대문에서 사업을 한다던가 브랜드를 런칭 하는 등의 자기 사업은 35세 이후에 생각해라. 최고의 한국 패션 브랜드에 도전해보고 그 구조 안에서 배우는 것이 젊어서는 더 소중하다. 30대 이후에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회사 브랜드로 취업하기 어렵다.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내 돈으로는 만져볼 수 없는 비싼 패턴, 비싼 봉제, 비싼 소재를 접해보라. 그래야 더 높은 차원의 디자인을 보는 눈이 생길 것이다.
유학을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하나,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MD에도 연령 제한이 있다. 귀국 후에 브랜드로 입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리나라 정서상 함께 오랫동안 일했던 막내 인턴 디자이너나 MD를 뽑지, 유학 다녀온 나이든 사람을 뽑기는 어렵다.


MD 취업을 원한다면 인턴 기회를 잡아라

현실적으로 공채 MD를 뽑는 회사는 제일모직과 이랜드 밖에 없다. MD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경력이다. 따라서 MD로 취업하고 싶다면 인턴기회를 잡아라. 3학년 하기기업연수에서 MD를 지원하거나 졸업 후에 MD 인턴부터 시작하라. 공채로 선발하지 않는 만큼 MD는 매우 폐쇄적인 루트를 통해 채용한다. 즉 인맥을 쌓는 일도 꽤 중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