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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모드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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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허성도 교수님의 전통문화 특강 <우리 역사 다시 보기>

  • 작성일2012.08.31
  • 조회수17990
에스모드 서울에서는 한국적 전통 미학을 패션에 접목시키고자 매년 한국 전통 문화 특강을 개최하고 있다. 2007년 이래 한국복식, 건축, 예술, 문양 등 여러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초빙해 전통 문화 특강을 열고 있으며, 올해는 8월부터 두 달에 걸쳐 총 5강의 특강이 열릴 예정이다.

작년에 이어 지난 8월 29일, 한국 전통 문화 특강 제 1강으로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 고양을 위해 서울대 인문대학중어중문학과 허성도 교수의 ‘우리 역사 다시 보기’ 강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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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참 많은 곳에서 강연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이 가장 젊은 청중입니다.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패션학도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참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서양 논리학을 통해 세계를 분석하게 되면 나와 세계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 즉 비대칭적 관계만을 맺게 됩니다. 혹시 길가의 꽃을 5분 이상 본 적이 있으신가요? 들꽃, 초가집, 바위 같은 사물을 오랜 시간 보며 대화하는 것, 그것이 대상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때 나와 외부는 대칭성의 세계를 이루게 됩니다. 패션과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생명을 불어넣어 소통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조선은 망한 것이 아니고 세계 역사상 유래 없이 장수한 왕조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조선이 망한 이유를 배운 기억이 나시죠? 국사학자들은 문제점을 찾는 것에 능합니다. 따라서 잘한 것보다 가슴 아픈 역사만을 기록하게 되고 우리는 몰락과 침략당한 기억, 실수만을 역사적 사실로 인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사학은 관점을 보는 것이지 사실은 사실대로 따로 존재합니다. 이제 한국의 역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터키의 아바스 왕조와 아프리카의 가봉을 제외하면 중국, 일본, 유럽을 포함해 그 당시 500년 이상 지속되었던 왕조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700년, 신라가 1000년, 고려가 500년, 조선이 500년을 갔습니다. 국사 시간을 통해 반상제도, 성리학, 사색당쟁 등을 거론하며 조선 왕조가 망한 이유만을 강조해왔지만, 사실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이상을 장수할 수 있었던 원인을 찾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우리 왕조가 이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민족의 특수성에 기인합니다. 한국관광공사 사장 이참 씨가 ‘한국인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고, 경쟁심이 높은 기질의 국민을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기질을 가진 한국민들은 결코 권력자가 시키면 그대로 하는 만만한 백성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왕조가 최소한의 정치, 경제, 법률, 조세, 문화, 사회적 합리성이 기반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회적 합리성이 없다면 500년 이상을 견딜 백성은 없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조선왕조실록

한국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록들을 문화유산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조선왕조실록'을 예로 들어 볼까요? 조선왕조실록은 476년간 왕의 모든 행동, 모든 소리를 정리한 문서입니다. 사관은 왕과 신하의 대화, 상소의 내용과 조정회의의 내용, 왕의 행동까지 그 날 그 날 기록합니다. 왕의 공식 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습니다. 사관이 이렇게 정리한 문서를 사초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관은 이 모든 기록을 집에 가서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누군가가 사실을 변질할 수 없도록, 외부세력이 기록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죠. 왕이 죽고 나면 그 다음 달에 신록을 편찬해 이를 네 부로 만듭니다. 오천만 자가 넘는 조선왕조실록을 일일이 활자본으로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직접 수기로 기록하면서 나올 수 있는 오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동일한 네 부를 인쇄하는 것이죠.

유네스코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온 인류가 이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보물로 보기 때문입니다. 왕과 신하의 역사를 담은 실록은 영국, 프랑스, 일본 그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이런 역사서는 조선왕조실록 뿐만이 아닙니다. 국가의 공문서를 500년간 정리한 승정원 일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최고 권력기구의 회의 일지입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정비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료체계 책인 동의보감 역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역사기록의 예, 조선왕조 말까지 지진의 총수는 2,368회

이런 선조들의 기록은 현재 우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진을 예로 들어볼까요?삼국사기에는 지진이 87회, 삼국유사에는 3회, 고려사에는 249회, 조선왕조실록에는 2092회 나옵니다.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흙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등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오늘날의 지진 공학회에서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계로 내어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있다는 통계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지역별로 통계를 내어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핵발전소, 방폐장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지진 뿐만이 아닙니다. 강우, 황사, 태풍 등 기후를 2,000년 동안 기록해 놓은 나라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세계인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조세제도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한 나라

고려 말의 문란한 토지세 제도를 고치고자 세종은 수학자들을 동원해 조세의 대상이 되는 18억 평의 땅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고려시대의 두 배에 이르는 면적입니다. 수학과 과학을 동원해 제도를 확립했지만 그래도 계속 토지세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농민들의 상소가 올라옵니다. 이에 세종은 농민들의 불만을 반영해 세종 12년에 수정안을 마련합니다. 하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됩니다. 현행안보다 수정안이 농민들에게 유리하겠지만 농민들이 좋아할지는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세종은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찬성 9만 8,000, 반대 7만 4,000표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시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되었습니다. 찬성이 물론 많긴 하지만 반대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기 때문에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이 동일해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다시 개정안이 만들어졌고, 이를 기본으로 3년간 시범실시를 했습니다. 성공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다시 부결됩니다. 시범 실시한 지역의 토질과 다른 지역의 토질이 다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또 다른 지역에서 시범실시를 합니다. 그리고 또 부결됩니다. 작은 지역에서 실시하는 것과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날런지에 대해 토론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13년만인 세종 25년에 최종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백성들에게 유익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를 하고 시범실시를 하고, 십 년이 넘게 토론을 한 나라는 우리 밖에 없습니다.

청소년, 여성, 노약자를 위한 형법상의 배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재판을 세 번 하는 삼심제, 이것이 근대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문종 때부터 사형수에게 삼복제를 실시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국가가 백성의 생명을 빼앗는 과정에서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재판을 지방에서 한 번, 도 관찰사에서 한 번, 마지막에는 지금의 미국대사관 자리 뒤편에 있는 형조에서 총 세 번 봤습니다. 마지막 형조에서의 심문과 재판은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직접 사형수를 심문한 내용도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심리록이라고 합니다. 현재 번역이 되어 있어 교보문고에서 구매해 보실 수도 있습니다. 왕은 이 사람이 사형수라는 증거가 과학적인지, 행여나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을 한 것이 아닌지를 밝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20명 중 한 명 정도만이 사형을 당하고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석방됩니다. 이런 체계적이면서도 약자를 위한 노력을 한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조선의 법을 알고 싶다면 ‘추관지’라는 책을 보면 됩니다. 그 책에 나온 판례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오늘 날 청소년이 범법을 하면 교도소가 아닌 소년원에 보냅니다.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추관지에 보면 15세 이하의 소년과 70세 이상의 노인은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더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지 않는 한 구속할 수 없다고 나옵니다. 또한 10세 이하의 소년과 80세 이상의 노인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더라도 구속 조차 할 수 없다고 나옵니다. 대신 벌금을 받았습니다. 70세 이상의 노인은 장형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여성 역시 장형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사형수라 하더라도 여성은 수갑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장옷을 입고 얼굴만 내놓고 다니는 여성 본래의 존엄성과 인권을 지키려는 조선의 노력이 이 정도였습니다. 죄수들의 인권, 특히 약자들을 보호해주는 이런 법률이 전세계에 또 있을까요?

삼국시대, 조선시대의 과학과 수학은 세계 최고 수준

동양에서는 지구가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월식은 음기가 강할 때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순지라고 하는 학자는 월식을 설명하면서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습니다. 1,400년대에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내면서 동양에서 가장 먼저 '천원지방설'을 부정한 나라가 바로 조선입니다.

세종은 29세의 이순지에게 수학을 배웁니다. 이를 기초로 과학자들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종은 한양 땅의 위도를 계산해 낸 이순지에게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달력이 있어야 조수간만의 차를 알고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얻어오는 달력은 조선에 정확히 맞지 않았던 것이죠. 이순지는 1,444년에 ‘칠정산편’이라는 책을 써서 음력과 양력을 계산해내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여부를 보려면 달력으로 일식을 계산해 내 그것이 맞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 하고 그로부터 200년 동안 우리는 이 달력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1,400년대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외부의 도움 없이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분초 단위까지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습니다. 아라비아, 중국, 그리고 조선입니다.

조선시대 홍대용이 낸 ‘주해수용’의 뒤에 보면 삼각함수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sinA, cosA, tanA가 소수점 열세 자리까지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수학책 '구장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썼던 것입니다. 우리가 피타고라스라고 불렀던 것 역시 ‘구고정리’란 말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파이와 비율, 방정, 삼각함수 모두 우리는 서양에서 온 외국 수학인 줄 알고 배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학, 천문학 등 첨단의 과학을 자랑하는 나라이며, 이는 현재 한국이 IT강국으로 발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나를 보는 것, 우리 문화를 보는 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

우린 왜 이런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세계의 중심은 내 가슴 속에 있습니다. 인류의 시원을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세계의 문화를 알려면 이 땅의 문화를 먼저 보십시오. 처마의 선, 이것이 전세계의 사람들이 평화를 느끼고 안정을 느끼는 선일 수 있습니다. 오래된 기와집의 바랜 기둥의 색이 인류가 가장 편안한 감정을 갖는 컬러일지도 모릅니다. 외부에 나가서 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인정하시고 자신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살면서 나를 보는 것, 우리 문화를 보는 것이 세계화의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