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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내 몸에 각인된 '한국인의 미학'에 대해 생각하다

  • 작성일2012.04.26
  • 조회수6444

2012년 4월 12일 1시, 충남 온양 민속박물관에 도착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서울을 빠져 나와 교외로 나온 것만 해도 좋은데, 거기에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이니 더욱 좋을 수 밖에. 따뜻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우리는 박물관 본관으로 가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랐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생생문화학교 직원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박물관 안에는 강의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강의실 옆면이 전면 유리로 탁 트여서 마치 야외에서 수업을 하는 기분이었다. 창 밖으로 푸르게 돋아난 잔디와 이제 막 꽃을 피운 싱싱한 개나리가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해 준다. 문화학교 교장선생님께서 간단하게 3일간 있을 수업에 대한 개요를 설명해 주셨다. 문화재청 소속이시라는 교장선생님께서는 이번 기수만 특별하게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로 구성되어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새삼 학교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많은 학생들 중 선발되어 이 혜택을 누리게 된 만큼 더욱 열심히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각오가 생겼다.

이번 생생 문화학교에서 만나 뵙게 될 강사진 소개가 이어졌는데, 다들 대단한 분들이시라 강의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연신 탄성을 내며 앞으로의 강의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여는 강좌 : 왜 한국인의 미학인가?

첫 번째 강의로 조희숙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시원한 인상처럼 말투도 강의도 시원시원 하셨다. 선생님은 조금 독특한 경력을 갖고 계셨는데 방송 작가로 일을 시작 하셨다가 한국의 미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몇 편 제작 하셨고 그 일을 계기로 전주시에서 한옥 관련 사업에 스카우트 되시어 공무원으로 일하시다가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하신다. 조희숙 선생님 역시 방송작가를 시작할 때만해도 한국의 미학에 대해서 잘 모르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국 미학에 빠지게 되었고 그 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내가 처한 상황에 선생님의 이력이 비교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며 수긍이 갔다.

그 후 선생님께선 김백선 대표님과 한국 무형 문화재 아홉 분이 함께 하신 한국 공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 하시면서 한국 공예의 앞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요지는 이것이었다. 공예품이란 몇 백, 몇 천만 원의 가격으로 전시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밥상, 수납장처럼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써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하며 세월의 이야기가 쌓이고 그것이 후손에게 물려져 떠나간 사람의 기억을 되새겨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많이 쓰는 플라스틱이나 조립식 가구들은 수명이 짧아서 시간이 가면 못쓰게 되어 버리지만, 우리나라의 짜맞춤 가구들, 그러니까 못을 전혀 쓰지 않는 공법으로 만드는 가구들은 세월이 갈수록 그 멋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한국 전통의 공예품들의 가격이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 하게 되는데 그 결정적 요인은 바로 소비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아름답고 튼튼하고 실용적인 제품이지만,  수요가 없다 보니 가격은 비싸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절된 한국의 전통을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라도 이러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힘써야겠다는 책임감을 막중히 느끼게 되었다. 

조희숙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박물관은 설립자 세 분 중 한 분 이신 온양박물관 이사장님께서 오셔서 박물관의 설립과 전시품들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 주셨다. 온양 민속 박물관은 계몽사 사장님께서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창립하셨다고 한다.

온양 민속 박물관은 타 박물관과 달리, 국보나 보물처럼 귀한 것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일상에서 사용되던 소품들을 모아놓았다. 이러한 소품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품격 있는 삶을 살았는지, 어떤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 세분이 모여서 온 힘을 기울이셨다고 한다. 젊은 시절 시작해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분이 되었지만 박물관에 대해 소개하시는 이사장님의 모습에서는 당당함과 존경심이 느껴져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강의실 한쪽 켠에 있는 수납장에 대해서 잠깐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것들을 만져보고 느껴보며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대단한 문화를 갖고 있었는지 느껴보라는 말씀에 무심코 지나쳤던 장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장을 이루는 나무들 사이에 못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철제 장식에는 분명 못으로 보이는 것이 쓰였지만, 나무 사이에 못을 박지 않고도 이렇게 견고하게 몇 백 년을 버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이렇게 짜맞춤을 한 가구들이 못을 쓰는 가구들보다 수명이 4~5배 더 길다는 설명에 한번 더 놀라게 되었다.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나무들의 수축 작용까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각과 캘리그라피

여태명 교수님의 전각과 캘리그라피에 관한 강의가 이어졌다. 먼저 영상물을 보았는데 다소 생소했던 캘리그라피에 대해 금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강의가 이어졌는데 전각의 기법이나 쓰이는 용도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한번 훑어주셨다. 전각에도 이렇게 많은 기술과 의미가 있고 여러 종류의 도구가 쓰이며, 전각에 선인들의 삶의 지혜가 숨어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캘리그라피란 쉽게 말해 손 글씨를 의미 하는 것이다. 동양에서 쓰는 붓은 둥글고 모가 크고 길기 때문에 붓을 잡은 사람의 그날의 기분이나 성격 성향에 따라 매번 다르게, 섬세하게 표현이 된다는 설명이 재미있었다. 마치 재즈처럼 연주자의 즉흥적인 감성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동양의 붓글씨 그리고 동양화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또한 캘리그라피가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쓰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영화 포스터, 책, 광고 등 정말 많은 곳에서 쓰이는데 그것은 바로 글씨가 표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과'의 '사'와 '사랑'의 '사' 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두 단어에서의 '사'자는 다르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었다.  활자를 대부분 인터넷에서 접하는 우리 세대에서는 간과하고 지나칠 수 있는 글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태명 교수님께선 우리의 멋진 전통이 발전한 사례인 캘리그라피가 지금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선 예전의 것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대의 감성을 살려 일상에서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젊은 예술가들이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국의 주거건축

세 번째로 김봉렬 교수님의 한국의 주거건축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밝은 분위기의 선생님들과 다르게 약간 무뚝뚝해 보이시는 교수님이셔서 긴장했었는데 강의에 임하는 우리들이 열정적이라고 칭찬하시며 농담을 건네자 분위기는 다시 삽시간에 좋아졌다. 역시 베테랑 교수님은 다르시다.

김봉렬 교수님은 본인께서 제작하신 책의 사진들을 보여 주시며 선사시대 주거문화부터의 건축 사진을 보여주시며 설명해 주셨는데,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배경과 그것들이 실제 있었던 곳의 사진,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이야기해 주셔서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고려시대에 관한 설명은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의 건물들은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것들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그림을 보며 설명을 들었는데, 천장 커튼이 큰 건물의 방을 나누는 역학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큰 기둥의 모습으로 건물 내부가 아주 넓었고 입식으로 생활했으며 식사를 할 때, 한 명당 하나의 테이블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남자들의 예를 갖춘 복식은 치마였고, 편히 입는 옷은 바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마와 바지가 남자와 여자를 구분 하는 아이템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또한 도트무늬 옷감들이 사용된 것도 확인했고, 뷔페 형식으로 음식을 차려놓은 것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천편일률적으로 조선시대의 것에만 한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그림을 이해하면 오늘의 강의를 다 이해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조선시대 한 양반집의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림을 보면 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마당이다. 마당이란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인데 한옥은 바로 마당을 건물의 핵심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또한 건물이 이리저리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냥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속한 마당을 뜻하는 것이었다. 집을 그린 그림에 나무와 밭과 산이 보이는데, 이것은 바로 집밖의 풍경 또한 나의 소유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이처럼 한옥은 서양의 건물처럼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 그리고 한옥 안에서 바라보이는 바깥 풍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설명을 듣고 나서 어찌 한옥을 다시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봉렬 교수님의 강의를 마지막으로 첫 날 강의를 마친 우리들은 온양박물관에 속한 카페로 이동해 저녁 식사를 하고 간단한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서로 자신을 소개하며 다른 반 친구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둘째 날, 아침 7시 교장선생님의 모닝콜을 듣고 일어난 우리들은 근처 해장국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다시 온양 박물관으로 향했다. 둘째 날은 첫 날보다도 더욱 빡빡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들어선 온양 박물관은 어제의 강의 덕분인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건물의 소소한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들을 품고 있다는 생각에 박물관 전체가 보물처럼 느껴졌다. 오전에는 박물관 견학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서 보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온양 박물관에는 2만여 점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텐데 설명과 함께 들으니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인다.


백자의 재발견, '대충 철저히' 만드는 자연미

'백자'하면 떠오르는 거라곤 흰색 밖엔 없었다. '고려청자'하면 여러 이미지들이 떠올랐지만 사실 백자에는 어떤 임팩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겐 정연택 교수님의 백자에 대한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백자의 아름다움이 내게 너무 크게 다가와서 졸업 전에 백자를 주제로 한 옷을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조선 백자의 미는 오묘한 투박함에 있는데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교수님이 백자에 대해 하셨던 키워드 중 하나가 '대충 철저히'였다. '대충 철저히'라니? 과연 이게 무슨 말일까? 사실 한국의 흙은 도자기를 만드는데 그다지 좋은 흙이 아니라고 한다. 점성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장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도자기는 형태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감탄을 자아내는 자연스러움을 갖고 있다. 도자기를 빚다가 어느 순간 조금 어그러지고 잘 맞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도공이 빚는 일을 대충 그만두기 때문에 우리의 도자기는 자연스러울 수가 있다. 하지만 이것을 '대충'이라고만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멋을 내기 위해서는 이전에 철저히 노력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들다가 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멋을 위해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그야말로 '대충, 철저히' 빚는 것이다.

사진일 뿐인데도 달 항아리의 오묘한 멋은 나를 한눈에 사로잡는다. 그리고 정연택 교수님께서도 첫 날 강의하셨던 교수님들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은 이제 죽은 물건이다. 일상에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형 문화재 선생님들께서는 전통의 것들을 잊지 않으려 백자를 만들지만 사실 그것은 현재와는 맞지 않다. 때문에 우리의 일상에 녹여 쓸 수 있는 도자기가 나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명강을 마치신 후 정연택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기타를 치시며 노래를 불러주셨다. 조만간 전시를 열 계획이라고 하시니 꼭 찾아 뵙고 싶다. 시간 날 때 명지대에 있는 백자 체험을 통해 백자를 만들어 보고 내 옷에 응용할 방법을 찾아보고자 다짐했다. 강의 중간에 백자를 의상으로 표현할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잊어버릴까봐 얼른 스케치도 해 놓았다.


지정 문화재를 다시 보다


복숭아 한 알을 보고 감동하는 것이 시인의 재능이라 했지만, 그 재능 역시 배워야 나오는 것인가 보다. 오전에 박물관에서 보았던 투구의 아름다움에 대해 오후에 들은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장경희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야 감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교수님께서는 온양박물관에 있는 물건들을 지정문화재로 등록시킨 장본인이셨다. 투구와 갑주, 갑주함, 용문촛대, 정교한 한옥 모양으로 된 감실, 거북 금사 흉배 등 유물에 관한 디테일 컷을 보며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투구에는 지금 우산에 쓰이는 장치가 있었고 정교한 은박과 금 주조 용과 봉황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며 갑주의 어깨에는 움직일 때마다 용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미는 신기한 장치가 되어있었다. 감실 같은 경우에는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옥의 구조와 거의 동일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그 작은 구조물 안에 그림, 문살, 난간 등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조상들의 정교한 솜씨에 감탄을 했다. 백자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정교한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감식안이 생긴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다.


바느질, 붙임과 이음의 미학.


드디어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에게 가장 '친숙한' 것을 보여주실 분이 오셨다. 바로 차이의 김영진 대표님이다. '차이' 브랜드는 한복을 주로 만드는 브랜드인데, 그냥 한복이 아닌, 김영진만의 눈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복을 보여주는 특별한 브랜드이다. 입고 오신 범상치 않은 한복 때문에 우리들의 눈은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김영진 대표님의 강의 역시 우리들을 실망 시키지 않았다. 원래 연극 배우가 꿈이셨던 김영진 대표님은 생계를 위해 옷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 후 한복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고 한다. 그 후 한복을 배우고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느낌이 들어간 한복을 만들고 나서 그 반응이 너무 좋아 '차이'를 런칭하게 되셨다고 한다.

처내, 매죽굽 꽃신, 낙천건 등 전통의 소품들을 재해석해 만든 아이템들이나, 김영진의 맛을 담은 차이의 옷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것이야 말로 정말 재해석된 옷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표님은 한복이 특별한날 한 번 입고 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상시에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신기했다. 또 같은 이야기였다. 캘리그라피의 여태명 교수님도, 한옥을 이야기 하신 김봉렬 교수님도, 백자를 이야기 하신 정연택 교수님도, 여는 강좌를 해 주신 조희숙 원장님도 마치 모든 강사님들이 입이라도 맞추신 듯, 모두 같은 말씀을 하신다. 한국 문화에 대해 정통하다는 이 유명한 분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고, 몇 십 년 동안 전통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시면서 이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셨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으로는 한국적인 요소가 적용된 '옷의 일반화법'에 대해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흥분까지 생겼다.


한국인의 미학

김백선 대표님은 추상적인 붓 그림으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몇 개의 점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점을 찍기 시작했지만 갈수록 점을 찍는 행위가 생각을 끌고 간다.” 바로 이것 이었다. 깨달음에 손뼉을 쳤다. 디자인을 할 때도 어떤 것을 생각하고 그 것에서 출발해서 디자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다가, 이리저리 입체구성을 해보다가 혹은 종이 접기를 하다가, 사진을 찍다가, 음악을 듣다가 어떤 행위 자체가 생각을 끌고 가게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 디자이너이시기도 한 김백선 대표님은 그것을 경험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내 일상에서 채집되어 내 몸에 각인되어 있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선생님의 강의는 나의 일상이 곧 한국이고 그것이 바로 한국인의 미학이라는 점으로 이어졌다. 나는 선생님의 이 말씀을 듣고 송창식씨의 말이 생각났다. “내 노래가 국악이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이리라. 선생님께선 완성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내 몸에, 내일상에 녹아있는 행위가 이끄는 디자인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일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는 가장 세계적이고 동시에 가장 우리에게 맞는 디자인이 아닐까?


한국인의 전통과 한국인의 상상력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무형문화재 정책의 본령은 궁극적으로 과거의 가치를 손상 없이 보존하는 데 있다. 하지만 그것의 활용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현재 우리 문화재 보존의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앞서 교수님들이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말씀하시던 문제를 최공호 교수님은 강의가 시작하자마자 말씀하셨다. 앞의 강의들을 듣고 난 후라 예전이었으면 따분하게 들었을 법한 강의가 새롭고 활기차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한국만큼 전통이 연속적으로 발전해 온 나라도 드물고, 또한 그것이 근대화를 거치며 철저하게 단절된 나라도 드물다. 우리나라 무형 문화재 제도가 80년대부터 생겨났다고 하니, 이제 겨우 3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교수님은 다른 나라 장인을 예로 들어주시며, "그들이 생존의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에 일생을 투자하는 일은 분명 명분에 걸맞는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전통과 현대가 경계 없이 녹아 들어 현재를 사는 모습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왜 이 강의가 마지막에 편성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교수님은 '현대화'가 아닌, '현재화'를 강조하는데 약간은 알듯 모를 듯한 말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인정한 7개의 공방을 샤넬에서 사들인 일이나, 듀퐁에서 중국 옻칠 만년필을 만든 사례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전통 수공예가 현재의 감각에 녹아 들어 고부가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었다.

강사 선생님들께선 전통을 이용하는 지혜와 방법을 모두 강조하고 있었다. 패션을 공부하는 젊은 한국인으로서 깊이 고민하고 앞으로 이 점을 일생을 바칠 과제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중에 어떤 옷을 디자인 하게 되든, 이를 염두에 둔다면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밤 10시를 넘긴 시간에 우리는 일과를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전통한옥의 생활친화성과 과학성

마지막 일정을 책임지실 분은 배재대학교 김종헌 교수님이셨다. 마지막 일정은 현장 학습이었는데 그 장소는 바로 국내 최고령 건물인 맹씨행단과 아산 외암마을이다.

현장에 나가기 전, 교수님께선 “왜 한국의 건축은 목조로 지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셨다.  당연시하게 생각해 왔던 목조 건축이 새삼 기이하게 느껴졌다. 목재는 불과 물에 취약하다. 우리나라의 석탑이나 석조 기술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궁이나 사찰 같은 주요 건물을 목재로 지었고, 질 좋은 화강암 석재가 풍부한 한국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목조 건물이 많다. 돌로 만든 다보탑이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등은 돌을 가지고 목조의 느낌을 낸 티가 역력하기까지 하다.  교수님께선 석조 건축은 죽은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셨다. 동 서양 모두 영속성을 지닌 석재로 무덤을 만든다. 서양은 집 자체에 영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석재로 건축을 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윤회사상을 통해 죽음 자체를 인정하고, 집의 영원성 보다는 다시 살 수 있는 생명력을 원하는 사상에서 목재 건축 선호가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옥은 산사람을 위한 건축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것들을 극복해야만 했다. 나무로 만든 집 밑에 불을 때야 한다는 사실,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화, 수, 목 서로 상극인 요소가 어우려져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든다는 사실,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오묘하고도 놀랍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한옥에 쓰인 목재들이다. 반듯하게 만들 기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휜 나무들을 골라 사용해 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멋을 추구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교수님께서는 한옥의 중심이 마당이라는 사실과 풍경의 특징, 마을 구조 등에 대해 설명하셨고 우리는 실제로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따뜻한 날씨에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잠시 잠이 들었지만, 맹씨행단에 도착하자 너무 아름다운 풍광에 다시 힘이 솟기 시작했다.

한옥은 기둥을 땅속에 박지 않는다. 기둥이 목재이기 때문에 땅속에 들어가면 썩기 때문이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기둥을 땅에 박지 않고서 건축이 가능할까? 텐트를 칠 때도 땅속에 핀을 박아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한옥의 지혜가 있었다. 주춧돌 위에 기둥이 있고 그 기둥이 지붕의 하중을 받쳐 내리 누르면서 그 강한 압력으로 지탱이 된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맹씨행단의 내부와 사당, 그리고 맹씨행단 대청마루에 앉아서 한참 동안 풍광을 바라보고 나서 우리는 외암마을로 이동했다. 우리나라 돌담은 야트막하지만 여기에도 지혜가 숨어 있었다. 멀리에서 보면 마을의 상황이 한눈에 보이지만 정작 가까이 다가서면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공동체의 소통에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전통 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바깥마당에 있었다. 요즘은 땅이 있으면 경계까지 울타리를 치지만 한옥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바깥에 마당을 두었다. 때문에 막힘과 풀림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막힘없이 마을을 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한옥에도 그대로 쓰여 집 안에도 막힘과 트임으로 방문객들의 동선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정말 놀라웠다.

마을을 다 둘러보고 마을 바깥에 있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간단하게 막걸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니 시원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짙다. 언제고 꼭 다시 찾아와서 제대로 다시 보리라는 생각을 하며 수료식을 하기 위해 다시 온양박물관으로 향했다.

설문지를 작성하고 교장선생님과 간단한 담소를 나누며 한 명씩 소감을 이야기했다. 체험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의 생각이었지만, 강의 또한 어느 것 하나 뺄 것이 없이 좋았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강의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그것을 옷으로 풀어내야 하는 일만 남았다. 누구나 보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 정서를 담은 메시지의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틈나는 대로 우리 고유의 전통에 대해 더 많이 체험해야 하리라.


한국의 미학에 대해,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 조상들의 생활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의 사명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참여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나중에 친구들 손 붙잡고 박물관에라도 꼭 같이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좋은 기회를 주신 학교와 문화재청, 온양박물관 측에 감사한다.